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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그림 배우기/문인화와 동양화

사군자 매화도 자료 1

조선시대, 조희룡, 신명연, 강세황 외


출처 e뮤지엄


매창매화도 (오죽헌박물관)
조선시대 36.1×25.2cm



전신명연필 선면매란도 중 홍매와백매
조선시대 175.3×60cm


신명연필 홍백매도
세로 32.1cm, 가로 23.9cm
신명연은 청나라 문사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국 회화를 소장하고 있던 문인 화가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의 둘째 아들로, 형인 신명준(申命準, 1803~1842)과 더불어 그림과 시에 뛰어났다. 그는 산수, 사군자, 화조, 화훼 분야의 회화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화조화와 사군자에서는 청대 화풍의 영향이 보인다. 그 중 사군자 분야에서는 매화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양주화파(揚州畵派) 나빙(羅聘, 1733~1799)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면서도 나빙의 매화에 비해서는 꽃의 수가 적은 묵매도를 그렸다.
이 작품은 홍매(紅梅)와 백매(白梅)를 함께 그린 그림으로 신명연은 이와 같은 홍백매도를 많이 그렸다. 과감한 구도가 돋보이는데, 화면 아래쪽 가운데에서 올라오는 백매화 나무줄기가 심하게 꺾여 지그재그로 힘 있게 뻗어 올라가고 그 뒤로 가는 홍매의 줄기가 따라 올라온다. 매화 줄기는 물기 많은 먹으로 농담을 변화 있게 주었다. 백매의 꽃은 구륵법(鉤勒法)으로, 홍매는 몰골법(沒骨法)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신명연이 백매와 홍매를 함께 그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 방식이다.





조희룡 1789~1866 붉은매화와 흰매화 (일부)
조선시대 124.8×46.4cm
두 그루의 매화가 그려진 병풍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화가다. 유작 중 가장 많은 수가 매화 그림인데 이와 같은 자신의 매화화벽(梅花?癖)을 『석우망년록』에 상세히 적었다. 이 그림은 두 그루의 매화가 커다란 화면 전체에 펼쳐져 있는 본격적인 전수식(全樹式) 병풍이다. 병풍 전면에 걸쳐 용이 솟구쳐 올라가듯 구불거리며 올라간 줄기는 좌우로 긴 가지를 뻗어내고, 흰 꽃송이와 붉은 꽃송이가 만발해 있는 걸작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이전 시대에 묵매가 많이 그려진 것과 달리 이 작품과 같이 청대 화풍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색채의 홍백매(紅白梅)가 많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의 오른쪽에 적힌 글에서 조희룡은 자신의 매화 그림이 기존의 화론(?論)에서 말하는 화법(?法)이 아닌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의 서법(書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다. 점점이 피어 있는 화려한 매화는 ‘은하수에서 쏟아 내린 별 무늬’와도 같고, ‘오색 빛깔 나부산(羅浮山)의 나비를 풀어놓은 것 같다.’고 하여 예술세계에서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는 절정의 단계를 나비가 훨훨 나는 것에 비유하였다.



조희룡필 묵매도 50.4×41.2cm



조희룡필 묵매도 27×36.5cm


조희룡필 묵매도
조선말기 100.1×44.2cm



조희룡필 묵매도 세로 111.3cm


편우영환첩 조희룡 홍매도 
크기세로(화면) 16.6cm, 가로(화면) 21.7cm 



우봉 조희룡이 그린 매화 액자 
크기세로 59.4cm, 가로 40cm
'차생기불득도나부(此生旣不得到羅浮) 대매부춘소중(大梅富春小中)'라 쓰여 있는데, '나는 이미 나부(신선세계)에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큰 매화가 봄을 풍요롭게 하여 조금은 적중했도다'라는 뜻이다. '우봉(又峰)'이라는 글씨 아래 '조희용(趙熙龍)'이라 음각된 성명인이 날인되어 있다.





조희룡필 홍매도
세로 200cm, 가로 74.2cm
이 그림은 그의 매화 그림 특징을 잘 보여준다. 좌측에서 비스듬히 위를 향해 굵은 매화나무등걸이 올라가고, 다른 한 가지는 아래를 향해 각을 이루며 내려와 있다. 이 가지를 경계삼아 좌우에 글을 썼다. 이러한 배치 방식에서 그의 뛰어난 구도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굵은 매화 줄기는 담묵의 붓질을 여러 차례 칠하여 형태를 만들고, 이에 짙은 먹의 점을 찍어 거친 나무껍질 느낌을 잘 살렸다. 꽃은 붉은 점의 농담을 달리 하며 화사한 홍매의 꽃송이가 피어나게 하였다.



조희룡필 매죽도 중 4폭
세로 130.3cm, 가로 47cm


조희룡 묵매도 대련 중 1폭
가로 68.0cm, 세로 166.7cm



조희룡 사군자 4폭중 1폭
세로 151.0cm, 가로 50.9cm



조희룡 홍매도
세로 163.0cm, 가로 43.1cm




조희룡 매화도
가로 110.8cm, 세로 51.5cm



조희룡필 사군자도 중 2폭



우봉조희룡작 사군자화


홍매도 조선시대 83×43cm



강세황필 사군자 및 행서


강세황필 묵매도
세로(화면) 31.0cm, 가로(화면) 22.5cm



명연대회호 첩
강세황
가로 33.4cm, 세로 32.4cm
표암 강세황(豹표 姜世滉)이 72세 때인 1784년 청나라 건륭(乾隆) 황제의 80세 생신에 베풀어진 천수연(千壽宴)의 진하 사은사(進賀謝恩使) 및 동지사(冬至使)의 부사(副使)로 연경(燕京)에 갔을 때 쓴 시와 사군자로 엮은 첩이다. 첫 장에는 <연대회호(燕 臺載毫)>라고 표제를 붙이고, 둘째 장에는 '삼가 천수연잔치를 기록한다(恭記千壽宴)' 라는 칠언을시, 셋째 장에는 오언절구의 자작시를 자필로 썼다. 그 뒤를 이어 사군자를 매 · 죽 · 국 순으로 배치하고 또 네 수의 시를 이어 붙여 모두 십일 면의 서화첩으로 구성하였다. 이 <연대회호첨>은 표암의 자작 시서화첩으로 연경에 부사로 갔을 때 제작했다는 확실한 제작동기와 1784년작이라는 절대연대가 들어 있어 표암 예술의 한 기준작이 된다.




전강세황필 화첩 중에서
세로 28.8cm, 세로 23.9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