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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그림 배우기/문인화와 동양화

사군자 매화도 자료 2


- 조선시대 어묭룡, 오달제, 송수면, 진극명
출처 e뮤지엄

어몽룡 달밤에 핀 매화
세로 119.1cm, 가로 53cm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은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로서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견보(見甫), 호는 설곡(雪谷) 또는 설천(雪川)이다. 판서 어계선(魚季瑄)의 손자이며, 군수 어운해(魚雲海)의 아들이다. 채색을 사용하지 않고 먹으로 그리는 매화 그림을 잘 그린 어몽룡은 대나무 그림에 뛰어난 이정(李霆)과 포도를 잘 그린 황집중(黃執中)과 함께 당시 삼절(三?)로 불렸다. 중국인 양호(楊鎬)도 그의 묵매도를 보고 그림의 품격이 대단히 좋다고 하였으며, 다만 거꾸로 드리운 모습이 없어 유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의 묵매화는 굵은 줄기가 곧게 솟아나는 간소한 구도와 단출한 형태, 고담한 분위기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조속(趙涑)과 오달제(吳達濟), 허목(許穆), 조지운(趙之耘) 등의 묵매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묵매도>는 중앙 집중적이며 수직성이 강조된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림 전체에 걸쳐 먹색은 중간 정도의 빛을 띠고 있다. 그리고 붓을 마르게 하여 붓자국에 흰 공간이 표현되는 비백법(飛白法)을 많이 구사하여 시원하고도 힘있는 필치를 보인다. 매화꽃의 꽃술이나 붓으로 찍은 나뭇가지의 태점(苔點)은 짙은 먹을 사용해 각각 끊어지는 방식으로 찍어 화면에 동적인 요소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전어몽룡필 묵매도
세로 95.4cm, 가로 51.5cm



매조도
세로 108.0cm, 가로 56.5cm



물속의 매화
전어몽룡필 수중매화
세로 53cm, 가로 11.8cm





오달제필 묵매도
세로 104.9cm, 가로 56.4cm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과 함께 삼학사三學士로 불리는 오달제(1609~1637년)의 매화 그림이다. 그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의和議를 극력 반대하였는데, 후에 청에 끌려가서 모진 협박과 유혹에 굴하지 않아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상단에 그의 현손玄孫인 오언유吳彦儒가 쓴 숙종(재위 1674~1720년)과 영조(재위 1725~1776년)의 어제시御製詩가 있다. 매화는 약간 진한 담묵에 몰골沒骨로 그려 기교를 나타내지 않았으나 능숙한 필력으로 활달하게 획을 그어 서릿발 같은 기백이 역력하다.



오달제필 묵매도
세로 108.8cm, 가로 52.9cm
오달제의 <설매도>는 설중풍상雪中風霜 속에서 꽃망울이 맺혀있고, 매화에 바위와 대나무까지 곁들임으로써 강인성을 한층 부각시킨 작품이다. 늙고 단단한 매화등걸이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옹이진 채 나있고, 그 끝에서 다시 작은 줄기가 솟아올랐으며 늙은 등걸 밑에서 또다시 가지가 휘어져 나있다. 매화와 대나무가 횡간식橫幹式으로 뻗어 나온 구성은 당시 다른 화가들의 매화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처럼 눈이 쌓인 줄기를 입체감 있게 표현한 예는 많지 않다. 눈 덮인 줄기는 명암효과를 주는 듯 섬세한 붓질을 반복하여 입체감이 느껴진다. 간결한 꽃모양이나 섬세한 묵법 등은 조선 중기 매화도의 특징을 보이지만 가지의 구성이 자연스럽고 꽃 또한 가는 꽃술이 모여 있어 어몽룡이나 조지운의 매화도에서 보이는 17세기 매화도의 일반적인 특징과는 차이가 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지는 않으나, 오달제의 기백을 쏟아낸 듯 기운 찬 매화도는 그의 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사호 송수면 묵매도
가로 39.5cm, 세로 86.6cm
조선 말기 문인화가 사호 송수면(沙湖 宋修勉, 1847 ~ 1916)의 묵매도이다. 액자 표구가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은 편이나, 부분적으로 얼룩이 남아 있다.
화면 오른쪽에서 시작된 매화의 굵은 줄기는 중앙과 좌측으로 뻗어나며, 오른쪽 상단에는 제시(題詩)과 함께 소치(小痴)의 호와 인장이 찍혀있다. 지묵법(漬墨法)으로 꽃을 그리고 가는 선으로 꽃술을 그려 넣었다. 부러진 줄기와 가는 가지의 간결한 구도, 그리고 꽃술의 표현 등에서 조선 중기 매화도의 영향이 보인다. 제시의 내용은 "눈 가득한 산 중에는 고사(高士)가 누워 있고, 달 밝은 숲 아래에 미인이 오는구나. 사호" 이다.




사호 송수면 묵매도
가로 31.7cm, 세로 87.3cm
조선 말기 문인화가 사호 송수면(沙湖 宋修勉, 1847 ~ 1916)의 묵매도이다. 액자 표구가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부분적으로 얼룩이 남아 있다.
매화를 중앙에 그렸고, 화면 상단 왼쪽에 제시(題詩)를 적었으며 "소치(小痴)"의 호와 함께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찍혀있다. 줄기를 굵고 거친 필선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부러진 줄기와 가는 가지의 간결한 구도, 그리고 꽃술의 표현 등에서 조선 중기 매화도의 잔영이 남아있다.



송수면 필 매죽 10폭
세로 146cm, 가로43.1cm
송수면은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로 사군자에 능했고 사호沙湖라는 호를 사용했다. 그는『고씨화보顧氏畫譜』와『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畫譜』를 임모하여 ‘사호부만묵沙湖鳧漫墨’이라 제한 화첩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병풍은 1폭과 10폭에는 묵죽을 그리고 그 가운데 2폭부터 9폭까지는 묵매를 그린 것이다. 매화 그림은 Y자형을 기본으로 수직으로 솟은 직립형과 중간에서 시작하여 아래를 향해 내려오는 도수형倒垂形이 있다. 이처럼 굵고 가는 가지가 여러 개 겹치면서 펼쳐지는 구도와 줄기에 수많은 태점 표현 등은 그의 다른 묵매도에서도 볼 수 있다. 양끝의 묵죽 그림은 대나무 간의 거리를 먹의 농담 조절을 통해 잘 표현하였다. 송수면의 대나무 그림은 유덕장柳德章(1675~1756)이나 신위申緯(1769∼1845) 등의 묵죽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각 폭 상부에는 중국 시인이 지은 대나무와 매화 관련 칠언절구七彦絶句를 적었다.




진극명필 매화도
세로 121.8cm, 가로 58.8cm



만취 야매도
세로 55.5cm, 가로 23.5cm
작가의 정확한 정보는 알수 없으나 작품 우측 하단에 '조선 만취'라 한 것으로 볼때 통신사 수행원으로 일본에 와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만취 작품은 부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만취 산수도 선면>이 있다.



홍매도
二樓筆紅梅圖
세로 181.5cm, 가로 43.4cm





산수절지 서삼면 화삼면




유치봉 필 묵매도
지름 25.5cm




김진규 묵매도
가로 67.0cm, 세로 48.5cm
조선 중기~후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의 <묵매墨梅>로,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의 《석농화원(石農畵苑)》 원첩 권1에 17번째로 수록되어있다. 왼편에는 김광국의 화평이 적혀있으며, 오른편에는 조선 중기 수묵 화조도의 양식에 따라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간일한 구도 안에 그려 넣었다. 김광국은 김진규의 문장과 그림 솜씨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며, 이 작품을 소중히 아끼고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다




윤득신 수금도 묵매도
가로 19cm, 세로 29.8cm
가로 19.2cm, 세로 29.8cm
묵헌(默軒) 윤득신(尹得莘)이 그린 수금도와 묵매도임. 수금도는 물새 한마리가 연 줄기에 앉아 먹이를 찾는 모습을 그린 그림. 묵매도는 간략한 필선과 생략적 묵법으로 매화의 정취를 그린 그림. 액자 전체 크기(가로 68.2, 세로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