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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3/써놓기

[글귀] 인연이야기 / 법정스님 / 동쪽나라

"그런 공덕은 다만 삶과 죽음을 되풀이 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조그만 결과에 지나지 않아, 언젠가는 흩어지고 말 것들이오. 그것은 마치 물체를 따르는 그림자와 같아서,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럼,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인가요?"

"청정한 지혜는 깊고 온전해서 그 자체가 텅 빈 것, 이와 같은 공덕은 세속적인 명예욕을 가지고는 구해도 얻을 수 없소."

공덕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은 공덕은 참 공덕일 수 없다. 베푸는 쪽이나 받는 쪽, 베푸는 물건, 이 세 가지가 다 청정하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을 때 진정한 보시이며 공양이라고 할 수 있다.

생색을 내지 않고 하는 일이 참 공덕이라는 의미이다.

 

 

음욕의 근원을 끊으려거든 먼저 그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고 생각이 풀린 뒤에라야 도를 얻을 수 있으리라."

부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열 두 가지 인연은 어리석음(無明)을 근본으로 삼는다. 어리석음은 모든 죄의 근원이요, 지혜는 모든 선행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먼저 이 어리석음을 끊어 버린 다음에야 생각이 안정될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홀로 있을수록 넉넉한 뜰을 지닐 수 있다. 마음에 꺼리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보다는 외롭더라도 홀로 있는게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가를 겪어 본 사람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홀로 있을 때의 너는 온전한 너이지만, 친구와 같이 있을 때는 절반의 너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활을 다루고

뱃사공은 배를 다루며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다루네

 

사람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그 기능이 한낱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무슨 일이든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그 일이 인격 형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모든 일이 인격화될 때 그 기능은 새로운 빛을 발한다.

 

자기를 다룬다는 것은 자기야 말로 모든 일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말도 바로 이런 뜻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남을 괴롭히면 스스로 괴로워진다.

 


덜된 사람은 착한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미워하고 질투하며, 나쁜 소문을 듣고는 도리어 기뻐한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남의 결점은 숨기고 좋은 점은 드러내어 널리 알리며, 나쁜 짓을 보면 그것이 번뇌에서 온 줄 알고 가엾이 여겨 용서해 준다."

 

 

깨달음은 얻는 것이 아니라 잊는 것이다

 

 

세상에 공것이란 티끌만큼도 없다는 것이 우주 질서인 인과 관계다. 내일이 없이 오늘만 살고 말아 버린다면 누가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고 미래는 현재의 지속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내게는 나 자신의 현 존재를 미래로 이어 나가게 할 책임이 있다.  <인과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전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받는 것을 보라. 내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짓고 있는 것을 보라."

그러니 자기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곧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외부적인 현상이나 환경도 자기와의 관계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이 연기緣起의 이론이다.

 

 

그러나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 뒤의 일이 더 큰 사실로 느껴져서인지 그 진실성에 믿음이 간다. 인간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생물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탈을 쓰고 개도 못 할 짓을 마음대로 저지르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다른 생물을 대할 면목이 안 선다. 그의 종착역이 어디냐를 따지기보다는 인간으로서 그 '있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되풀이 되는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볼 때 내 부모나 형제 아닌 생물이 어디 있겠는가.

무심코 불쑥 뱉은 한마디 말이 스스로를 윤회의 쇠사슬로 묶어 버린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내 몸짓 하나, 말 한마디, 생각 한 번이 새삼스레 두려워진다. 조심하고 조심할 일이다.

 

 

한 번 모질게 맺힌 마음은 쉬 풀리지 않아 윤회의 괴로움을 되풀이 하고 있다. 크게 뉘우쳐 참회하지 않고는 풀릴 기약이 없다. 수행자들의 일상에 참회와 발원이 따르는 것도 이런 뜻에서일 것이다.

<법구경> 제5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 원한을 버릴 때만 풀리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