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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음이 평화를 누리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평정은 끊임 없는 성찰과 바른 가르침, 공명정대한 행동, 그리고 오직 고결한 목표에 대한 추구에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만족스럽게 행동하되, 남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려 애쓰지는 말라. 악평이 너를 따라다닌다 해도 그것이 선한 행동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신경 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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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초기 단계에는 안정이 최선이다.
그 다음으로 그것이 재발하지 않도록 감시한다. 비록 처음에 폭발되는 화를 진정시키려는 시도는 감히 못하지만 그것을 현혹시켜 비껴가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복수의 수단들을 모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화를 늦추고 시간을 벌면서 즉각적인 보복을 막을 방안들을 생각해낼 수 있다. 화가 배교적 약할 경우에는 그가 좋아할 다른 화제나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꺼내서 잠시 주의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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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는 앞으로도 배우기를 원치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필요 이상 솔직히 충고를 했다. 그 결과 너는 그 사람의 잘못을 고친 것이 아니라 기분만 상하게 했을 뿐이다. 다음에는 네가 하는 말이 진실이냐 아니냐만 염두에 두지 말고, 그 말을 듣는 상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도 함께 생각해라. 좋은 사람은 충고를 기꺼이 받아 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적을 받으면 이를 분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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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두 귀는 합당한 말, 달콤하고 부드러운 소리만 들으라고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너는 웃는 소리, 우는 소리, 부드러운 말과 비참한 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사람의 목소리와 동물이 짖거나 우는 소리를 모두 들어야 한다. 가련한 자여, 왜 너는 노예의 고함 소리, 물건이 부딪쳐 쨍 하는 소리나 문이 꽝 닫히는 소리에 부르르 떠는가? 너의 귀가 그렇게 예민해도 아마 천둥 소리를 듣지 않을 재주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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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네가 가질 수 있는 것을 다 갖지 못했음을 기뻐하라.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네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앞섰다고 해보자. 네 친구의 마음 속에서 네가 우선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라. 많은 이들이 너를 앞섰다고 해보자. 네 앞보다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를 잊지 마라. 너의 최대 결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너의 계산법은 틀렸다. 너는 자신이 준 것은 크게 생각하고 받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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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칭찬할 만한 사람을 증오하는 것은 추하다. 그러나 네가 가엾게 여겨야 마땅한 사람을 증오하는 것은 더욱 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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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부당하게 입은 피해를 치유하는 것이 그것에 대해 복수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 일인가! 복수는 많은 시간을 잡아 먹는다. 네가 한 가지의 부당한 피해에 대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동안 너는 더 많은 잘못에 스스로를 내어준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받아 아파하는 시간보다 화를 내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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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함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악인이며, 악인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우리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서로서로 사정을 살펴주고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제게 해를 입혔지만, 저는 저 자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너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이 시간 혹은 오늘만을 셈에 넣지 마라. 너의 생각과 마음자리를 전체적으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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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금 하려는 것은 부당함과 화를 동시에 참아내는 것이다. 몸이 아픈 사람이 짜증을 내고 광인이 욕설을 하고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휘두르는 주먹을 너는 왜 참아 넘기는가? 그야 당연히 그들이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못한 채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과 그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통하는 변명이다.
너는 계속 반론을 제기한다. "그럼 의도가 없다면 벌을 받지 않고 완전히 면죄라는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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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테면 해보라. 나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리기에 그대는 너무 미약하다. 내 인생을 주도해온 이성이 이를 금한다. 내가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해도 화의 해악이 그보다 더 클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부당함은 그 한계가 분명하지만, 화가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론 :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참아내기가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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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 보다, 당신이 먼저 화를 버려라
가장 위대한 인물들의 운명도 불안하게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름 없는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궁정에서조차 슬픈 장례 행렬이 이어지는 것을 본 사람은 자신의 초라한 오두막에서 아들의 장례를 치를 때 그 애통함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당한 일을 결코 당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권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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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야만적인 왕에게는 어떻게든 적절한 응징을 했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겠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에 적절한 결론은, 그런 사악한 행동이 불러 일으키는 분노조차 가슴속에 감출 수 있고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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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했던 사람은 자신이 상태가 안 좋을 때 하는 말은 들어 주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악덕을 가로막을 장애물을 찾아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늘 차분한 상태로 유지하여 갑자기 마음이 동요하는 심각한 사태에 부딪히더라도 화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혹은 예상보다 큰 화가 나려 할 때 그 화를 가슴 깊이 넣어두고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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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허락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가슴에 담고 견뎌야 하고 휩쓸려 가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화의 모든 증상들을 정반대로 돌려 놓아야 한다. 표정은 최대한 부드럽게 하고 목소리는 온화하게 하며, 걸음걸이를 늦추면서 화의 신호들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우리의 내면이 겉모습에 순응해가면서 편안해질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는 화가 나면 목소리가 낮아지고 말수가 적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그를 파악한 친구들이 화를 숨기는데 대해 그를 책망하곤 했지만 그는 그들의 책망을 섭섭해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가 화가 났다는 사실은 알아도 그것을 느끼지는 못하니, 이 아니 기뻐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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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와 숨김이다
많은 사람들이 근거도 없는 의심으로, 혹은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리면서 스스로 불만거리를 생산해 낸다. 화는 종종 우리를 찾아오지만, 사실은 우리가 제 발로 그것을 찾아가는 때가 더 많다. 우리가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우리 앞을 가로막더라도 물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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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의 성격을 알고자 할 때는 언제나 그 일에 시간을 주어라. 일렁이는 물결 위에서는 아무것도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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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우시포스, 나는 화가 났으니 자네가 저 쓸모업는 녀석을 매로 다스려 주게."
그렇게 함으로써 플라톤은 다른 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자기 또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러니 필요 이상 심하게, 즐거이 남을 벌주고자 할 것이다. 자기 자신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노예를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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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시시콜콜 파고들지 말라.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뭐라고들 하는지, 어떤 고약한 소문이 떠도는지, 게다가 비밀스럽게 묻어둔 것까지 굳이 들춰내는 사람은 자기 감정을 선동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해석하기에 따라 부당한 피해처럼 보일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더러는 그냥 무시하고 더러는 웃어 남기고, 그래도 남는 것들에 대해서는 용서하는 것이다.
화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대부분의 것들을 그냥 농담으로 듣고 넘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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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화라는 이 나쁜 질병의 조짐이 있을 때 스스로 의사가 되어 치료하는 것, 입에서 나오는 말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잡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리 막는 것이 상책이다.
격정은 맨 처음에 그것이 들끓어져 일어나는 순간에 진단하는 것이 쉽다. 병이 발병하기 전에는 반드시 전조증상이 나타난다. 폭풍이 오기 전에도 항상 그 조짐이 있듯이, 우리 마음을 뒤흔드는 화와 사랑, 그 밖에 모든 돌풍과도 같은 격정들이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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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너의 화를 돋우지 않을 것이고 너의 화를 묵묵히 참아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냥하고 인정스럽고 원만한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아첨으로 보이는 정도라면 곤란하다. 과도한 유순함이 외려 화를 잘 내는 사람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에 사람은 참 좋은데 화를 잘 내는 친구가 있었다. 그에게 감언이설을 하는 것은 독설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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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이유로 화를 내고 사람에게, 자기 직업에, 때로는 장소에, 때로는 운명에 때로는 자신에게 화를 내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기 위해서는 앞서도 말했듯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너무 많은 일, 너무 중차대한 일로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 가벼운 짐을 어깨에 졌을 때는 넘어지지 않고 나르기가 쉽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 어깨에 얹어 놓은 짐을 지탱하는 것은 어렵다. 그 무게에 짓눌린 우리는 기회가 오자마자 얼른 그 짐을 내던져 버린다. 짐을 지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우리는 그 무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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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마음의 동의하에 일어난다
후에 생겨나는 의식적인 움직임, 그러니까 위해를 당했다는 인상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화다. 화는 의지와 판단에 의해 복수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두려움에는 회피의 충동이 따르고, 화에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려는 충동이 수반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네가 어떤 것은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어떤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할지를 가늠하는 일이 과연 마음의 동의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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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서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최고의 레슬링 감독인 피로스는 선수들에게 절대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수시로 일렀다고 한다. 화는 기술을 흔들리게 하고 오로지 상대를 해칠 생각에만 몰두하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성은 인내를 권하지만, 화는 복수를 재촉한다. 애초에 제거할 수 있었던 고통의 원인을 그냥 놔두면 우리는 결국 더 큰 불행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단 한마디 모욕의 말을 참지 못해서 추방을 당했다. 사소한 모욕의 말을 조용히 참아낼 마음이 없었기에 더 무거운 불행에 휘말린 것이었다. 자신이 누리던 최대한의 자유가 어떤 식으로든 침해된 데 분개한 나머지 그들은 제 목에 스스로 예속의 굴레를 씌웠다.
화는 솔직함이 아닌, 분별 없음의 표현
날 때부터 용맹하고 굳건한 기질을 타고 나는 사람들은 훈육으로 유순해지기 전까지는 쉽게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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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는 어떤 사악한 것들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다 할 것이며, 자신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한계를 넘지 않도록 신경 쓸 필요가 있는 것과는 제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 화에게 출입 허가를 내줘서는 안된다. 하지만 가끔 누군가의 해이해진 마음에 자극을 줄 필요가 있을 때는 짐짓 화가 난 척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화를 내는 것은 걱정을 하거나 비탄에 잠기는 것 못지 않게 쓸데없는 일이다.
"하지만 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때야말로 우리가 열심히 대항해야 할 때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몸으로 싸우는 격투선수들조차 자신을 때리는 상대방의 힘을 소진시키려고 고통스러운 타격을 참아낸다. 그가 마침내 주먹을 날리는 때는 화가 날 때가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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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모든 문제에 대해서 공정한 심판관 노릇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 중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화의 최대의 근원은 "나는 죄가 없어." 혹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말로 질책을 당하거나 제재를 받으면 원망하는 마음을 품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원래의 악행에다가 고집과 오만의 잘못을 또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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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온몸에 무기를 두르는 순간에는 안색이 창백해지고, 가장 용감무쌍한 병사라도 전투의 나팔이 울려 퍼지면 조금은 무릎이 떨린다. 가장 위대한 지휘관도 마주선 양쪽 군사들이 격돌하기 직전에는 심장이 쿵쿵거리고, 최고로 달변인 연설가도 대중 앞에 서서 마음을 가다듬는 동안 손끝 발끝이 굳어 온다.
화는 단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세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적극적인 추구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동의 없이는 어떤 추구도 일어나지 않으며, 이성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복수나 징벌을 추구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 복수를 원하다가 이성이 발동해서 즉각 마음을 가라앉힌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이것은 화라고 하지 않고, 아직까지는 이성의 명령에 따르는 <마음의 움직임> 이라고 부른다. 이성을 가뿐히 뛰어넘어 홱 낚아채서는 마구잡이로 휩쓸고 가는 것이 바로 화다.
그러므로 위해를 당했다는 인상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동요, 즉 가슴이 철렁하는 최초의 느낌은 화가 아니다. 이는 위해를 당했다는 인상 자체가 화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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