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이 세계와 삶에 대한 고도로 세련된 지적 통찰의 한 표현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신축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잘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우리는 보행의 반경을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차단된 시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동작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활발한 사고작용도 따른다. 툭 트인 시야는 무한을 느끼게 한다.
그곳에는 수직공간은 있어도 평면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이웃과도 온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속의 지면(知面)들도 서로가 맨송맨송한 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흙이다. 그렇다, 인간의 영원한 향수 같은 그 흙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추상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마치 온실 속의 식물처럼.
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이 떠오른 순간 가슴에 맺혔던 멍울이 삽시간에 술술 풀려버리고 말았다.
이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 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거다. 언젠가 이 몸뚱이도 버리고 갈 것인데...
한동안 맡아 가지고 있던 걸 돌려보낸 거라고. 자칫했더라면 물건 잃고 마음까지 잃을 뻔하다가 공수래공수거의 교훈이 내 마음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일까.
인정이 많으면 도심이 성글다는 옛 선사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집착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든다. 해탈이란 고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의 경지를 말한다. 그런데 그 고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집착에 있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에 대한 집착은 멏 곱절 더 질긴 것이다. 출가는 그러한 집착의 집에서 떠남을 뜻한다.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사문들은 어느 모로 보면 비정하리만큼 금속성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냉기는 어디까지나 긍정의 열기로 향하는 부정의 기류다. 긍정의 지평에 선 보살의 자비는 봄볕처럼 따사로운 것이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 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인 것이다.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버린다면 내 인생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고와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뜻이다.
법구경에는 이런 비유도 나온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같이 그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왜 우리가 서로 증오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같은 배에 실려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나그네들인데..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된다. 똑같은 개념을 지닌 말을 가지고도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것은 서로가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아가의 서투른 말을 이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말소리보다 뜻에 귀기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실 침묵을 배경삼지 않는 말은 소음이나 다를 게 없다. 생각 없이 불쑥불쑥 함부로 내뱉는 말을 주워보면 우리는 말과 소음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씨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꾸만 거칠고 야비해져가는 현상은 그만큼 내면이 헐벗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안으로 침묵의 조명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물 자체에서보다도 그것에 대한 소유관념 때문인 것이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버렸을 때 그는 괴로워한다. 소유관념이란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이렇듯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선민의식이 마치 자기의 신심을 두텁게 하는 일인 양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시야를 가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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